금강소나무숲길 4코스
커다랗고 아름다운 소나무가 기다리고 있다. 대왕소나무라고 불리는 600년 수령의 소나무이다.
이 소나무에 반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을 올랐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아픈 상처도 생겼다는데 그곳의 풍경과 이야기를 찾아 금강소나무숲길 4구간을 다녀왔다.
4구간을 천천히 탐방하며, 아름답지만 안타까운 대왕소나무를 살펴보자.
너삼밭에서 돌다리 하나를 건너 있는 대광천초소에 잠시 들른다. 대광천은 4구간뿐만 아니라 1구간과 3구간도 지나는 인터체인지와 같은 곳이다.
다시 한 번 신발끈이나 장비 등을 점검하고 출발한다. 이름처럼 커다란 빛을 머금은 대광천이 비단처럼 흐르며 시원하고 맑게 울리는 물소리로 우리를 환영한다. 아직 지칠 일은 없지만 더욱 힘이 난다.
전날 비가 와서인지 초록 숲이 더욱 싱그럽다. 서어나무, 산벚나무, 느릅나무, 도토리나무 등 젖은 숲은 투명한 햇살로 반짝인다. 새벽에 빗소리로 걱정스러웠던 마음은 잊혀진지 오래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화전을 이루고 살았는데 60년대 무장공비 사건으로 모두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흔적으로 남아있는 무쇠다리미, 그릇, 술병 등은 밋밋한 산이었을 당시의 기억은 잊은채 울창한 나무들 틈에서 고요히 머물러있다.
축축히 젖은 낙엽들을 포근히 밟으며 산행을 계속한다. 우리들의 표정이 여유만만했는지 해설사 선생님은 이제 꽤 힘들 것이라며 약간의 겁을 주신다.
이번에는 아래새재를 넘어야 하는데 새재란 새도 넘기 힘들어서 붙은 명칭이란다. 탐방객들은 물 한모금씩 더 마시고 힘차게 올라간다. 힘들지만 괜찮다. 산인데 당연하다.
대왕소나무를 만나러 가기 전 금강송 사이에 모여 앉았다. '앞으로 100년 안에 우리나라에서 소나무는 모두 사라질지 모른다고 합니다'로 해설사 선생님은 이야기하셨다.
급격한 기후변화도 문제지만 소나무의 에이즈라고 불리는 재선충이 심각하다. 일본에서 유입된 것으로 알려진 재선충은 솔수염하늘소로 인한 감염을 막기도 어렵고, 치료법이 없으니 막막할 따름이다.
울진의 금강소나무숲길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아직 재선충의 피해가 발견되지 않은 흔치 않은 청정지역이기 때문이다.
울진, 청송, 울릉을 제외한 제주 한라산을 비롯한 전국의 모든 지역이 재선충의 피해를 입고있다.
머지 않은 미래에는 소나무를 볼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너무나 울창한 소나무들 사이에서 이들이 내뿜는 숨을 마시고 있자니 더욱 안타까워진다.
대왕소나무가 보인다. 높이 9미터, 너비 5미터의 대왕소나무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건 어느 사진작가 때문이었다.
이 소나무를 찍기 위해 그는 거슬리는 주변의 나무들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본인이 찍고자 했던 대왕소나무의 가지까지 톱으로 잘라 정리하였다. 본인이 발견한 거라며 분재처럼 여긴 걸까.
조선시대에 금강송을 함부로 건드리면 죽을 때까지 곤장을 맞았겠지만, 시대가 다르기에 벌금 500만 원으로 마무리되었다. 200년 이상 금강송 한그루만도 700만 원이 넘는다는데 의아하다.
그래도 덕분에 이 좋은 소나무를 만인이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아름다운 사진을 찍겠다며 새의 다리에 본드를 붙이고, 리얼한 영화를 찍겠다며 배우와 협의도 하지 않고 잔인한 장면을 촬영하는 감독들이 아무렇지 않은가? 대왕소나무를 보며 감탄하던 탐방객들은 함부로 잘려버린 나무의 흔적들을 보며 탄식을 내뱉으며 슬픔을 대신한다.
유일한 데크가 대왕소나무 곁에 있다. 600년 소나무라고도 하는데 몇 십 년 전부터 600년 소나무라고 불렸으니 곧 700년 소나무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데크 때문에 소나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요리조리 잘 찍어보려 해도 프레임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데크를 놓을 때 위치선정에 있어 나름 심사숙고했겠지만 기념사진을 찍는 탐방객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긴다.
대왕소나무에서 눈을 돌리니 탁 트인 산세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 멀리 산 속 프레임에 갇힌 소나무 한그루가 그림 같다. 다른 나무들은 바탕색이 되어주고 본인만이 형태를 뽐낸다.
조령성황사를 나와 조금 더 걸으니 현령이광전영세불망비가 보인다. 푸른 이끼가 낀 비석에서 세월을 느낄 수 있다.
해설사 선생님의 간단한 설명에 따르면 여기가 한양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그리고 비석을 만들다 바쁜 일이 있었는지 '불망' 까지만 적고 '비' 를 빼먹었다고 한다. 허술함에 모두가 웃는다.
위쪽에는 무쇠솥이 있는데 이건 화전민의 흔적이 아닌 보부상들이 들르던 주막의 흔적이다. 그 주막의 마지막 주모의 무덤이 근처에 있어서 그 손자가 자신의 손자를 데리고 벌초를 온다고 한다.
손자의 손자까지 인사를 드리러 온다니 주막은 사라졌어도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계속 전해지고 있다.
오전에 출발했는데 어느새 해가 중천에서 산 너머로 조금씩 기울어져 간다. 숲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시작과 마찬가지로 맑은 소리의 대광천이 우리를 맞아준다. 산행의 끝이 느껴지니 힘들었던 순간은 잊혀지고 묘한 아쉬움만이 남아있다. 더 천천히 보고 느낄 것을.
물론 이 아쉬움이 우리를 다시 금강송숲으로 부를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숲은 더욱 푸르고 대광천은 더욱 반짝이며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