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왕피천 탐방로 은어길
왕피천을 탐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체력과 운동신경이 필요하다. 커다란 바위들을 넘어야 하기도 하고, 잘 닦여 있지 않은 야생의 미끄러운 비탈길을 나무에 의지하며 내려와야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키가 작은 아이나 산에 익숙지 않은 노약자들에게 추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왕피천을 포기하지 말자.
왕피천의 감동을 편하게 마주할 수 있는 길이 조성되어 있다. 바로 은어길이다. 은어길에 근접해 사시는 해설사 김순란 선생님과 동행했다.
은어길은 다른 왕피천 생태 탐방로의 원시림과 달리 반듯한 길로 느긋하게 한 시간 가량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며 거닐 수 있다.
봇도랑길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길은 과거 농업용수를 위해 만들어진 보를 위한 길이었다.
길은 헤맬 필요 없이 하나인데 상류에서 하류쪽으로 가도, 하류에서 상류 방향으로 가도 모두 좋다.
유유히 흐르는 맑고 푸른 물, 상쾌한 공기, 깎아지른 절벽 그리고 촘촘히 메워진 측백나무와 소나무들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저 천천히 걸으면 된다.
1급수가 있는 깨끗한 곳에서만 볼 수 있어 청정한 자연을 상징하는 물잠자리가 곳곳에서 우리를 맞이하고, 돌단풍, 싸리나무꽃, 개암나무 등의 식물들도 하늘하늘 인사한다.
은어길에는 몇 개의 소(沼)가 있다. 각 소들마다 자신들 주변의 절벽과 산을 데칼코마니처럼 비추며 멋진 풍광을 자랑하여 지나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백발소, 구보소, 까치소가 대표적이다. 험난한 여정이 없어서인지 스스로가 위축될 만큼 으리으리했던 왕피천 계곡보다는 소박하게 느껴지지만 그렇기에 더욱 포근하면서도 잔잔히 마음을 울리는 풍경이라 생각된다.
계속해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동굴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과거 농사에 필요한 물을 연결하기 위해 뚫었던 것이라고 한다.
얼핏 들여다보니 구멍이 작은 것도 아니고 깊이가 깊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것을 기계 없이 단순 도구만으로 힘겹게 뚫었을 옛사람들을 생각하니 지금은 쓰이지 않고 있는 동굴이 조금 쓸쓸해 보인다.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의 생명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는 은어도 있고, 자라도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물고기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을 알아서인지 목을 길게 빼며 나오다가 쏙 들어가 버리는 자라가 야속하지만서도 첫 만남의 아쉬움일 뿐이니 괜찮다. 이곳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다음을 기다려 본다.
은어길의 절경은 구보소라고들 하지만 도착지인 물병골에서 보는 풍광도 만만치 않다.
바로 돌아서지 말고 그곳에서의 경관도 차근히 감상하길 바란다. 평화로운 산골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은어는 혼자 있지 않아요. 항상 모여 있답니다.”
선생님은 회의라도 하듯 모여있는 거무스름한 물고기들이 있는 물속을 가리키신다. 아직 자라지 않은 작은 물고기라 관찰하기 어렵지만 이 길의 주인공을 만났다는 신기함과 기쁨에 한참이고 바라보게 된다.
맑디맑은 물에만 살고 수박향이 난다는 은어는 그 이름부터 참 예쁘고 신비하다. 이 아름다운 길과도 잘 어울리는 예쁜 이름이다.
은어길은 어쩌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맞이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일지도 모른다.
은어길 근처에는 보물이 하나 있다. 제498호 구산리 삼층석탑이다. 구산리에 왔다면 귀중한 보물도 만나보고 가도록 하자.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산리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울진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이다.
그렇기에 울진의 불교사와 석탑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논밭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구산리 삼층석탑 곁에는 감나무 한그루가 함께하며 곁을 지켜주고 있다.